희생 <1986>
2024. 9. 18.감상
최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<희생(1986)> 리마스터링을, 재개봉 당일 CGV에서 보고 왔다. 나는 평소 좋아하는 영화라 하면, 데이비드 핀처의 <파이트 클럽> 이나, 봉준호 감독의 <기생충> 등 대사나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풍자도 풍자이지만. 확실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를 좋아한다. 그래서 스스로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.으로 자신을 굳혀버려, 그 외의 영화를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다.
쉬면서 두 달 정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상관없는 기한이 생겼다. 덕분에 하루에 한 번, 가끔 마음에 들면 두 번까지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봤다. 덕분에 '그 외의 영화.'를 보게 될 기회가 생긴 것이다.
운 좋게도 집 주변에 아트하우스가 있어 처음 본 영화가 <비포 선셋>이었고, 그 기회로 자신에게 예술영화가 생각보다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. 그래서 두 번째로 도전하게 된 영화는 <희생>
처음 봤을때는 사실 정말 놀란 작품이었다. 어떤 시놉시스도 듣지 못한 채 보게 된 작품인지라, 시작 약 5분을 넘어가는 시간동안 들리는 마태수난곡에도 아무 것도 예상하지 못했고, 자식에게 인생 덕담같은 것을 늘어놓는 알렉산더를 볼 때에도 '지루하다.' 라는 생각 정도만 들었다.
그렇지만 이 감독 특유의 촬영 방식, 롱테이크를 이용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세상을 만들어내면서 꼭 그곳에 있는 착각을 주었기 때문에, 그 뒤의 세상까지 인도받을 수 있었다. 사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. 그 영화를 보면서 잔잔함에 빠져들었다가, 함께 두려움에 떨게 되고. 어떠한 장면에서 신성한 영향을, 또 어떤 장면에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.
카메라는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. 우린 카메라가 꼭 이들의 모든 것을 비춰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. 아니, 물론 그런 작품도 있을 것이다. 그러나 나는 영화의 필름은 세상이고, 카메라는 눈이라고 생각하는 바. 카메라가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는 자라면, 나는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. 특히나 현실감이 동떨어지는 이 작품에서는 더욱이나 이 영화가 '내가 어떻게 보든, 알렉산더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' 영화라고 생각했다.
내가 이 영화에 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?
다 본 뒤에도 주관적인 감상은 사실 '알렉산더가 망상에 빠진 게 아닐까?' 가 먼저 들었다. 신성한 구원이 느껴지지 않은 건 아니다. 희망을 피워내는 것과는 별개의 감상이었고, 다 끝난 뒤에도 분명 지루하고 졸린 영화였음에도 자꾸만 떠오르고, 무언가를 알아내고 싶었다.
난 늘 '영화는 감독이 만들어 낸 하나의 세상.'이라고 생각한다.2시간, 혹은 그 이상 그의 세상을 느끼는 것이라 한다. 그리고 그 세상은 감독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.
나는 희생의 세상에 들어가서, 이 조용한 공간에 빠졌다가, 혼란을 느꼈다가. 어느 순간 이 세상이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. 영화 <트위스터스>를 최근 봤을 때 '사랑하면 평생 그걸 이해하고 싶다.'라는 대사를 보고, 그 대사 하나가 정말 마음에 들어 후한 평가를 줬었다. 이 영화가 그렇다.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백치가 된 알렉산더.라며 주관적으로 해석했던 것과 별개로, 자꾸만 희망과 구원을 떠올리게 되는 게 내게는 이해하고 싶은 부분이었다.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려서, 사랑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.
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의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. 허상의 세상, 존재하긴 하는가? 불탄 집이 타기 전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진실을 알아내고 싶다. 난 영화에서 늘 뛰놀며 감독이 만든 필름을 즐겼고, 감독이 보여주는 걸 믿으며 살아왔는데. 내가 하나하나 파 보면서, 그러나 영원히 정답이 존재하지 않을 이 영화를 알아내고 싶다. 알 수 없는 것을 영원히 탐구하고 싶은 마음. 내가 지식의 수준이 더 높았다면 좋았을텐데, 아는 단어도 부족하고. 표현할 방법이 없어 억울하긴 처음이다.